소쇄원(瀟灑園) /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

 

소쇄원은 광주 무등산 북쪽 자락이 내려앉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조성된 인공숲이다.  이 숲 조성의 첫 삽을 뜬 사람은 소쇄공 양산보(梁山甫:1505~1557)그후 3대에 걸쳐 대역사가 진행돼 오늘의 모습이 갖춰졌다. 울창한 숲을 등지고 선 전통 한국식 정원과 누각,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의 조화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완벽한 경관미를 자랑한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

 

전원(前園)은 대봉대(待鳳臺)와 상하지(上下池),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愛陽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溪園)은 오곡문(五曲門)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光風閣)을 곁들이고 있다. 광풍각의 대하(臺下)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다.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內園) 구역은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당(堂)과 오곡문(五曲門)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梅臺)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곡문(五曲門) 옆의 오암(鼇岩)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桃塢)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 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 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았다.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가적(道家的)인 색채도 풍겨나와 오암(鰲岩), 도오(桃塢), 대봉대(待鳳臺) 등 여러 명칭이 보인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게액되어 있으며, 1755년(영조31년)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 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瀟灑亭卽事)』에는 간접적인 기사가 있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 하였다. 1542년에는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李德裕)가 경영하던 평천장(平泉莊)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1574년 고경명(高敬命)이 쓴 『유서석록(遊瑞石錄)』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소쇄원 들어가는 길 도로에서 푸른 대밭사이를 지나고 나면 입구이다.

 

03

대봉대(大鳳臺) - 소쇄원을 찾아온 손님을 마중나가 기다리거나 배웅하는 곳이다.

 

대봉대에서 바라 본 입구

 

배수로를 통해 떨어지는 물줄기는 계곡으로 흐른다

 

소쇄원 계곡.

조경학자들은 소쇄원을 걸작으로 꼽고 있으며 한국의 조경사상 질적인 면에서 민간정원중 최고수준이라고 평한다.

 

소쇄원 초입부분 토담으로햇빛이 가장 잘드는 곳이다. 벽 상단에 애양단(愛陽檀)이라 적혀 있다. 흙과 돌로 차곡차곡 쌓하 올린 우리 나라 전형적인 토담이다.

 

소쇄원 내원으로 흘러드는 계곡을 가로지르게 되어 있는 곳의 오곡문(五曲門) 담장 아래로 흘러든 골물은 바위를 타고 소쇄원 내원 계곡으로 흘러든다. 흐르는 물줄기를 거르지 않고 자연을 이용한 소쇄원의 운치를 더해준다.

 

오곡문 나무 다리에서 바라 본 소쇄원

 

제월당

 

소쇄원 제월당 뒷편 풍경, 산 능선을 볼 수 있다

 

제월당

 

제월당 우측에서 바라 본 출입문

 

제월당을 통해 광풍각으로 드나드는 출입문

 

좌측에서 바라본 광풍각(우측)

 

제월당에서 바라본 광풍각 뒷편

 

광풍각 앞 계곡에 새벽 물안개가 오른다

 

계곡에서 바라본 광풍각

 

광풍각 안에서 바라본 풍경

 

광풍각 밑 계곡에서 바라본 풍경

 

광풍각에서 바라본 계곡 풍경

 

광풍각,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계곡 모습이 일품이다

 

입구 주변 대나무 밭이 운치를 더한다

 

소쇄원 늦가을

 

나무다리를 건너 돌계단을 오르면 처음 소쇄원 입구가 된다

 

사진 : 조선일보 포토갤러리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제4곡. The Old Castle 옛 성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