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洗美苑) 장독대 분수 - 두물머리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다

한 번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을 수밖에 없고,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도 결국은 반납하고 가야 할 것들에 집착하게 되니, 아는 것을 몸으로 옮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새벽은 새벽에 눈을 뜬 자만이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알아도 눈을 뜨지 않으면 여전히 깊은 밤중일 뿐입니다. 가고 오는 것의 이치를 알아도 작은 것에 연연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여전히 미망 속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서서히 빌린 몸을 반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죽음을 어둡고 쓸쓸하고 두려운 것이 아닌 혼의 탄생으로 맞이하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지요. 낡은 집을 두고 이제 새집으로 이사 가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활용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끝없는 사랑과 창조' 라는 우주의 섭리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 탄생을 위해 공기, 풀, 나무, 햇빛, 바람 등 수많은 생명이 동참했습니다. 또 앞으로도 수많은 생명이 우리의 성장을 위해 동참할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사랑하고 창조하다 가야 합니다.

 

자기의 몸에 비위를 맞추는 것은 창조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벌어서 쌓아 놓는 것은 창조하는 게 아닙니다.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지식이 들어 있어도 그 또한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잘 버는 사람보다는 잘 쓰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입니다. 공부를 하고 있을 때보다는 공부를 가르칠 때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널리 알리고 나누고 베풀다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늘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담뱃재 떨어지듯이 폭삭 늙어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타다 만 장작같이 미지근하게, 늘 무언가를 아쉬워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내 에너지를 모두 태우다 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정한 삶의 목표를 위해서 자기 몸을 쓰고 활용하다 가는 사람이 있고 몸에 비위를 맞추다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몸의 주인이 되고 자기 몸을 활용하려면 삶에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몸은 내 정신이 잠깐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그 몸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다시 말하면 욕망에 갇혀 살아갑니다. 욕망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욕망을 모시느라고 어찌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되어 즐겨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 몸도 모셔야 되는 것이 아니고 써야 될 대상입니다. 몸을 모시는 것은 곧 자동차를 사서 폐기처분할 때까지 매일 닦기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할 만한 삶의 목적이나 대상을 발견한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을 찾지 못했거나 잃어버린 사람은 늘 외롭습니다.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있는 그 근본적인 외로움은 이 세상 무엇을 갖고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 목적을 찾아야만 비로소 해결되는 것입니다.

 

힘은 결정했을 때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판단이 되기 전의 중간 상태에서는 천하에 제 아무리 힘이 센 소라도 한 걸음도 떼어 놓지 못합니다. 판단을 했을 때 왼쪽으로 갈 건지 오른쪽으로 갈 건지, 전진할지 후퇴할지가 결정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힘이 써지는 것 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바로 '삶의 목적을 어디다 둘 것이냐' 를 정하는 것입니다.

 

글 : 김수덕 /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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