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의 <네덜란드 속담>

고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세상을 웃음의 대상으로 보았고 16세기 도덕주의자들은 그를 추종해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듯 인간의 어리석음은 항상 논란이 되었지만 그것이 속담의 소재가 되는 순간, 사람들에게 폭넓은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속담은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해할 수 있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피터 브뤼겔 (Pieter Bruegel the Elder) / ‘네덜란드 속담 ( Netherlandish Proverbs)’,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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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6/1530~1569)의 <네덜란드 속담(Netherlandish Proverbs)>이다. 16세기 브뤼겔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속담이 인기를 끌었다. 가장 인기 있었던 속담집은 1500년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출간한 <격언집>이다. 속담과 라틴 작가들의 유명한 공식을 채집해 출간함으로서 시작된 속담채집은 16세기 백과사전 작업 중에 하나였다.

브뤼겔은 이 작품에서 한 마을을 묘사하면서 속담을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총 백여 개의 속담을 한 장의 그림으로 집약해서 표현한 것이 특징으로서 대부분 인간의 어리석고 무분별한 행동을 묘사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백여 개의 속담은 당시의 관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어서 현재까지 쓰이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이 작품의 원제는 <푸른 망토> 혹은 <세상살이의 어리석음>이다.

화면 중앙 중심에 있는 푸른색 지중의 누각에서는 악마가 고해성사를 듣고 있다. 그 앞에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남편에게 푸른색 모자가 달린 망토를 씌워주고 있는 것은 그녀가 지금 남편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른 망토는 부정한 아내를 암시하고 있으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부부 뒤로 푸른 옷을 입은 수도사가 그리스도에게 수염을 붙이려고 하는데, 그는 위선자를 상징한다. 푸른색은 전통적으로 기만을 나타내는 색이다. 기만과 죄악은 브뤼겔 작품의 특징이다.

누각 위에 붉은 색 깃발을 있는 남자가 달을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화면 오른쪽 하단 널빤지 위로 한 손에 빵을 잡고 오른손으로 다른 빵을 잡기 위해 팔을 벌리고 있는 남자는 이 빵에서 저 빵까지 손이 닿을 수 없어 끼니를 잇기 힘든 가난한 사람을 뜻하고 있다. 지붕 위에 빵이 널려 있는 것은 부자의 집을 뜻한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 쏟아진 밀가루 반죽을 주워 담고 있는 남자는 인생의 한번 실수는 다시 담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화면 앞 죽은 송아지 옆에서 구덩이를 메우고 있는 남자는 일이 터진 다음에야 대책을 세우는 것을 나타낸다.

화면 왼쪽 오른손에 숯을 들고 왼손으로는 물동이를 들고 있는 여인은 신용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화면 중앙 푸른색 지붕 옆 으슥한 곳에는 여우가 앉아 있고 옆에 있는 거위가 탁자 위 술병에 주둥이를 대고 있다. 여우 앞에 있는 접시는 비워져 있다. 이것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담장에 기대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주는 사람은 매사에 빈틈이 없는 완벽한 사람을 뜻하고, 물속에 서서 부채를 들고 손으로 햇빛이 물에 비추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잘된 이웃을 배 아파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 뒤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사람의 엉덩이가 보인다. 그 당시 화장실은 물 위에 지어 바로 하수 처리했다. 개울가 앞에서 잡은 물고기를 모닥불에 굽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물고기를 잡아 굽는 것은 시간과 공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한다.

화면 오른쪽 위 불난 집에서 불을 쬐고 있는 사람은 언제 어느 때든 이익을 놓치지 않는 사람을 뜻하고, 그 옆에 집 옥상에 앉아 바람에 망토를 던지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기회주의자를 의미한다.

피터 브뤼겔의 이 작품의 주제는 화면 왼쪽 뒤집어진 지구본에 나타나 있다. 뒤죽박죽인 세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인물들의 행동을 보면서 속담을 맞추어 보는 것이 이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다.

글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